1 실제 편지 가게의 소설화
실제 있는 공간을 소설로 만든다는 기획, 처음에 들었을 때 어땠나요?
→오래 전부터 PPL이 들어간 소설을 쓰면 어떨까 호기심을 갖고 있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는 이미 PPL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잖아요, 웹툰에도 있고. 처음 소설을 배울 때는 저한테 소설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장난감이라, 이래저래 활용해보고 싶었던 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PPL이 들어간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이 제품 광고를 위해서 어색한 행동을 많이 하는 경우가 많고, 그게 시청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보였어요.
그런데 이 기획은, 물론 ‘글월을 홍보하자!’의 목적으로 탄생한 소설도 아니지만은, 처음 기획을 들었을 때부터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글월이라는 장소가 품고 있는 감성과, 누구든지 글을 쓰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편지라는 소재가 ‘소설’과 너무 합이 잘 맞는 거였어요.
그래서 읽은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이야기 속에 실제 글월의 아이템을 넣고 그걸 활용하는 과정이 저한테는 억지가 아닌 굉장히 자연스러운 작업이었어요. 쓰면서 몇 번이나 ‘그래, 내가 이런 걸 해보고 싶었는데.’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같은 질문을 문주희 대표님에게도 드리고 싶어요. CP님의 제안을 듣고 처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가 궁금해요.)
→ 평소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게 제가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상의 갈래에 우리 공간이 드라마나 영화가 된다면? 이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한참 글월을 준비할 때 츠바키 문구점이라는 소설을 열심히 읽기도 했고,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글월의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할 때, 사람들이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판타지 속의 공간’이길 바랐거든요. 이곳이 마치 놀이공원처럼, 가상의 공간처럼 느껴지려면 어떤 장치들을 둬야 할까 상상하면서 공간을 꾸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실제로 이 판타지를 소설로 쓴다는 제안을 받으니 뭔가 제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은 마법이 생긴 것 같았어요. 바라던 일이 굴러 들러오는 순간을 맞이하며 작은 짜릿함을 느꼈어요.
이 이야기를 집필해보겠다는 결심(?)이 든 배경 혹은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어요.
→처음 글월에 방문했을 때의 ‘첫인상’ 덕이 컸던 것 같아요. 이성을 볼 때도 이 사람 마음에 든다 아니다가 거의 0.3초 내에 답이 나오잖아요. 저는 글월의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첫인상에, 이 공간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그 내용은 효영의 시점으로 글월에 담아두기도 했어요.
글월은 입장할 때의 설렘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번화가는 아니다 보니, 조용한 동네 여기저기를 굉장히 차분한 마음으로 둘러봤거든요. 그리고 1층 베이커리에서 나는 빵 냄새의 포근함과 건물 내부에 느껴지는 약간의 한기? 글월 문을 열었을 때 맡았던 우드 향과 살구색 빛깔이 주는 안정감 같은 것들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역시 ‘편지’요. 제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보니, 무언가를 쓰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그래서, 무언가를 쓰고자 온 글월 손님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어요.
가상의 설정을 만드는 일반적인 소설 작업과 이번 소설의 작업은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집필 과정의 좋은점과 어려웠던 점을 나눠서 설명해주셔도 이해가 잘 될 것 같아요.
→좋았던 점은 가상의 설정만으로 시작하는 소설보다 훨씬 디테일한 것들을 떠올리고 쓸 수 있었다는 점. <편지 가게 글월>을 집필할 때마다, 모니터 한쪽 창에 늘 글월의 홈페이지를 띄워둬요. 글월 내부의 이미지와 효영이 접고 만졌을 편지지와 문구류 등을 보고 있으면, 글을 쓰다 막히더라도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떼게 되더라고요. 이런 점들이 작가로서도 굉장히 많은 배움을 줬던 것 같아요. ‘아, 이 정도로 인물을 들여다보고 써야, 정말 조금이라도 독자에게 생생함이 전달되겠구나.’
어려웠던 점은 아무래도, ‘글월에 누가 되지 말자.’를 지키려고 애썼다는 것? 작품의 퀄리티가 너무 낮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글월과 다른 결을 만들어내서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나온 워스트드레서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어요. 글월에 오갔던 사람이 이 책을 봤을 때, ‘어? 이거 글월 아닌데?’라는 생각만 하지 않았으면… 하고 열심히 썼습니다.
기획자 / 소설가 / 브랜드(실제 공간) 세 곳의 합을 이루며 결과물을 도출하는데 부담감은 없었는지?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뤘는지.
→소설가인 저의 입장에서 먼저 말씀드리자면 앞서 말한대로 글월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책임감에서 오는 부담감이 조금 있었어요. 물론 집필이 어려울 정도로 걱정을 하지는 않았지만요. 기획을 해주신 CP님이 글월로 독자에게 뭘 전달하고 싶었는지와, 소설가인 저도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문주희 대표님이 이 공간이 어떻게 남기를 원하는지를 서로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조율했던 것 같습니다.
세 사람 다 ‘편지에는 진심이라’ 결국에 저는 잘 해냈다고 생각해요.
모두 편지에 진심이고 이 일을 하면서 더 진심이 된 세 사람이기도 하죠.(웃음)
소설 속의 글월의 제품과 서비스가 아주 내밀하게 들어가 있어요. 연애 편지 세트, 올리브 세트, 수미타니 고래 문진 등 제품명이 그대로 소설 속에 나오기도 하고, 글월의 시그니처 서비스인 모르는 사람과 주고 받는 편지, 펜팔서비스는 소설 속의 중요한 골자를 형성하는 소재이기도 하죠. 실제 있는 곳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과정과 노력이 들었는지, 이해하는 과정에서 글월에 대해 느꼈던 감상도 궁금해요.
→솔직히 ‘지금 이 아이템을 이야기에 넣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썼으면, 조금 어색한 부분을 독자님께 들켰을 것 같아요. 미리 계획하고 넣지는 않았고, 어차피 이 공간 안에 물건들을 구경하고 소비하는 손님들이니까 자연스럽게 손에 닿는 것들을 이야기에 담았던 것 같습니다.
수미타니 고래 문진에 관해서는 조금 더 할 말이 있는데, 효영과 영광이 가까워지는 장면에서 효영이 뭘 하면 좋을까를 조금 고민했었어요. 불면증에 걸린 영광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어린 아이가 잘 때 몸 위에 조금 무거운 이불을 올려두면 잘 자기도 하는 게 떠올라서 무게감 있는 물건을 보다가 문진 생각이 난 것 같아요.
그리고 펜팔서비스야말로 무조건 넣어야 하는 소재였어요. 글월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가, ‘이 책을 읽은 사람이 편지를 쓰고 싶게 하자!’였기 때문에, 이 사람은 왜 글월에 오게 되었는지 왜 펜팔 서비스를 하는지 등장인물마다 다른 동기와 사연을 만들어보았어요. 손님들을 만들면서 글월의 매력을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편지는 익명이든 아니든 수신자가 읽을 거라고 상정하고 쓰는 거기는 한데 결국 제일 먼저 읽는 건 필연적으로 발신자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글월에 오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러 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글월은 근무 일지를 씁니다. 일지에는 근무 시간, 날씨, 매출, 매장에 온 손님, 주요 판매 품목, 품절 상품 등의 항목들을 적습니다. 연희점과 성수점 1년 치의 업무 일지를 모두 인쇄하여 하드 형태로 전달을 드렸었죠. 이 일지를 처음 받아보셨을 때의 감상, 그리고 소설 속에 적용하기 위해 어떻게 활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글월의 러프한 기획을 쓰고 나서, 문주희 대표님의 해주신 조언이 ‘글월이 마냥 쉽게 잘 되었다는 느낌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물론 힐링소설로써 글월이 겪었을 사업적인 과정을 깊게 조명하지는 않았지만, 일지를 보고 있으면 글월의 하루하루가 쉽게만 넘어가지는 않았겠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요. 글월에서 일하시는 직원 분들도 편지와 편지 쓰는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시는지도 알았어요. 전부 소설에 적용하지는 못했지만, 글월에 오신 손님들의 인상적인 일화를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족 단위의 손님이, 아이가 테이블에 연필 자국을 내고 가자 다시 오셔서 테이블을 닦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그 일지가 인상 깊어서 소설에 녹여보았어요. 글월의 따뜻하고 인간다운 분위기를 잘 드러내주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주희 대표님은 글월의 업무 일지를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일지의 두께만큼이나, 글월이 쌓아간 많은 기록들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 이곳을 운영하기 위해 함께 일한 동료들과 그들의 마음들이 늘 진심되다고 느껴져요. 저보다 팀원들의 진정성이 더 높다고 느끼기도 하죠. 사람에 대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늘 좋은 사람들이 일했으니까요. 그리고 두꺼운 일지를 보면서 편지를 쓰는 사람들을 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이 일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고, 반응하지 않으면 조용히 사라질 일인데 매일매일 가게에 사람들이 오고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정말 작은 문화를 형성한 게 아닌가 하는 자부심도 조금 듭니다.
매장에서 실제 펜팔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의 편지를 받아서 소설에 반영하기도 했죠. 저희는 손님들의 편지를 읽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 소설에 실린다는 동의를 얻고서야 그 편지들을 읽어보게 됐어요. 모르는 이에게 쓴 사람들의 편지를 읽어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인상 깊은 편지라던가) 사람들이 익명의 편지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주로 털어놓는지 그 동향이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숨 막히는 일상을 견디다보면 사실 인류애가 사라지잖아요. 지옥철에 서 있으면 저 사람 좀만 내 옆에서 떨어져줬으면 좋겠고, 피곤해 죽겠는데 앓는 소리 하는 친구 있으면 카톡 답장도 하기 싫고… 그럼에도 편지 속에 어떻게든 ‘선한 마음’과 ‘친절’을 담아 건네는 문장을 보고 있으면, 저도 다시 타인에게 친절해질 수 있는 힘이 났어요.
서른 통이 넘는 편지를 읽다 보니까, 사람들은 결국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남에게 전달하며 고통을 견디는 존재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건 편지의 힘이기도 하지만 익명성을 가진 펜팔의 힘이었다는 게 깊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혹시 문주희 대표님은 소설에 등장하는 글월 손님들의 편지 중에서 인상 깊은 편지가 있으셨을까요?)
→ 우선 사람들이 이렇게 편지를 잘 쓰는지 놀랐습니다. 자리에서 6장을 거뜬히 쓰는 손님도 있는데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영화를 추천하는 사람, 헤어진 연인에 대해 털어놓는 사람, 서울의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간 사람 등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그 중 유독 제 힘으로 티켓을 끊어서 프랑스와 프라하로 떠난 손님의 편지가 인상이 깊었어요. 걱정한 것보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는 내용인데, 제게 지금 필요한 얘기라서 와닿았나봐요.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매장에 방문하는 순환이 생기기도 했어요. 글월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실제 있는 공간이라고?’ 하고 놀라곤 하죠. 소설을 보고 가게에 오신 분들께 저는 책 표지의 테이블과 맞은편 연화 아파트를 소개하곤 해요. 소설을 읽고 실제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언젠가 만나면 묻고 싶었어요.
→가끔 블로그에 <편지 가게 글월> 서평을 보곤 하는데, 사실 가장 행복한 내용이 ‘글월에 가보고 싶어졌어요.’랑 ‘이 소설 때문에 글월에 가게 되었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의 개인 미션을 완수했다는 기분이 들어 속이 시원한 기분이 들거든요.
저는 진짜 좋은 소설을 읽었을 때, 그 소설 속 인물이 내가 사는 세계에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고 믿기도 하거든요. 그랬던 소설이 <리틀 라이프>였어요. 몇 년 전에 아는 분께 소개를 받아 읽은 책이고, 지금은 베셀이 되어서 매우 기쁘기도 한 책인데… 다시 돌아오자면 소설의 삶과 현실의 삶이 무관하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저한테는 감동이 배가 되는 지점같아요.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소설을 읽고 글월 장소로 찾아와서 연화아파트를 본다면, 저 아파트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던 작가를 생각하게 되잖아요. 좀 더 적극적으로 작가의 창작 배경을 경험하게 되는 거니까, 소설을 더 풍부하게 읽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2 편지에 대하여
소설 내에서 편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작가님이 설정한 소설 속의 편지의 다양한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등장인물마다 다를 것 같은데, 조금 나열해보자면 효영에게 편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심을 전하는 도구였고 원철에게는 한처럼 남은 그리움을 표현하는 공터 같았어요. 민재에게는 못 다한 꿈을 이룰 무대였고, 은아에게는 답답한 마음을 속 시원히 떠드는 힐링 테이블, 영광에게는 자기의 마음을 다잡는 일기 같기도 했고요.
각자 다 다른 의미를 부여했지만, 저에게는 결국 편지가 어떤 선물처럼, 마음을 곱게 싸 놓은 보자기처럼 느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동안 받은 편지 중에 공유해주실 편지가 있을까요? 소설 속에 여러 인물이 쓴 편지가 나오는데요. 각 인물의 캐릭터에 맞게 편지를 쓴다는 게 잘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캐릭터에 이입하며 편지를 쓸 때 어떠셨는지, 편지를 쓰는 노하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저도 다른 캐릭터에 이입해서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어요. 약간은 연극에서 연기하는 사람과 비슷한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싶어요. 은아 같은 경우에는 잔정 많고 살짝 오지랖도 있지만 절대 밉지 않는 사랑스러운 아주머니를 떠올렸고, 영은 같은 경우는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예술가를 떠올렸어요. 약간 장재인 같은 인물? 주위에 있는 사람과 연예인들을 상상상하면서 그 사람의 말투나 대화할 때의 표정들을 흉내내면서 써봤던 것 같아요.
주인공 효영은 언니의 편지를 한동안 읽지 않잖아요. 편지는 마음을 전한다는 점에서 좋지만, 때론 불편함을 주는 매체이기도 한 부분을 짚어낸 것 같았어요. 편지가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시나요?
→사실 카톡도… 불편할 때가 가끔 있잖아요. 휴대폰에 미리 보기 설정 같은 거 해놓으면, 그 사람 이름이랑 한줄만 나와도 ‘아, 답장하기 싫은데.’ 이런 마음도 들고요. 효영에게는 봉투에 큼지막하게 자기 이름을 적은 언니의 편지가 이런 비슷한 느낌이었으려나 싶어요. 사실 조금 더 크고 묵직한 감정이긴 하겠지만요. 결국에 ‘너랑 지금은 대화하고 싶지가 않아.’라는 마음이겠죠.
효영은 이미 언니의 마음을 알지만 언니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어요. 알아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 확실하게 언니의 마음을 목격하고 나면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불편한 편지도 그런 거겠죠.
저에게는 효영처럼 도망가고 싶은 편지는 없지만, 이별 후에 남은 편지들이 좀 불편하더라고요. 버린 기억은 안 나는데, 어딘가 함부로 굴러다니고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책꽃이에서 책을 빼다가 사이에 넣어뒀던 전애인의 편지가 툭 떨어지더라고요. 읽을 엄두는 안 나서 다시 책장 사이에 숨겼어요.
편지를 쓰지 않는 세대가 많
→생일카드나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뭔가 기념이 아니면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는다는 건 슬프지만, 사실 이 날들만 편지를 써도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책 속에 인간관계에 대한 문장을 짧게 적기는 했어요. ‘관계가 의무가 되지 않도록’하면서, 라고. 좋아하는 것들일수록 의무감 없이 하기를 원하는 터라, 저도 편지를 쓰는 일이 꼭 해야 하는 어떤 것은 아니길 바라고요…
다만 시공간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한테는 가끔 편지를 써보길 바래요. 저도 이번에 책을 내면서 7~8년간 연락을 하지 않았던 은사님들께 책과 함께 편지를 보냈거든요. 사실 물리적인 거리도 가깝지는 않았고요. 그러다보니까 편지를 보내는 게 뭔가 더 즐거워진달까. 보내고 나서도 그 편지가 도착하기까지의 설렘을 덤으로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거 같아요.
미래에 편지는 지금과 크게 다른 쓰임은 아니겠지만, 모든 사람이 계절마다 한 번씩만 편지를 보내도, 세상이 많이 따뜻해질 것 같아요. 글월 일지 속에 어떤 분이 ‘이런 곳에서 일하면 마음이 아름다워지겠어요.’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편지를 쓰면 ‘마음이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질문은 문주희 대표님께도 그대로 드리고 싶었어요. 편지 가게를 운영하면서, 편지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아니면 편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쓰여지길 바라면서, 뭘 하고 계시는지 뭘 하고 싶으신지도요.)
→ 편지의 미래는 제가 늘 받는 질문인데 늘 어렵기만 합니다. 글쎄요. 편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제가 어떻게 알까요? 제가 명확한 인사이트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사실 편지에 대한 생각이 그리 분명하지도 심지 굳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쓰는 사람들이 계속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이런 가게에 와서 즐거워하고 놀라는 것을 목격할 때면 조금 더 해봐도 되겠다는 연명의 욕구가 생기긴 합니다.
결국에 제가 하고 싶은 건 좋은 감정을 조금 느끼게 돕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느끼는 찰나의 기쁨, 좋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풍만함, 동료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 후에 오는 흐뭇함 같은 좋은 감정 같은 거 말이죠. 편지를 쓰고 나서 대체로 찰나의 뿌듯함 같은 게 느껴져요. 저는 그게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고요. 가게에서 편지를 쓰고 난 후에 즐거웠다고 말하며 가는 손님들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기도 하죠. 살면서 좋은 감정을 얻는 수단으로 편지를 종종 찾기를 바라요.
3 소설/소설가에 대하여
이번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하지 않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타인을 평생 이해할 수 없고, 진심을 주고받는 건 진짜 삶에 있어서 아주 적은 부분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겁을 먹고 떨지언정 진심을 건네는 경험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말이 어렵다면 편지가 있으니까요.
1권이 끝나고 2권을 준비 중이기도 하죠.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1권이 편지를 쓰는 사람들의 사연을 담았다면, 2권은 편지로 만들 수 있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어요. 편지로 나눌 수 있는 감정 중에 하나인 ‘사랑’을 주제로요. 아마 1권에서 다 풀지 못했던 효영과 영광의 사랑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연애 편지’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혹시 문주희 대표님도 연애 편지를 쓴 적이 있으실까요? 어떤 내용인지 조금 듣고 싶기도 하고요.)
→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연애 편지는 늘 받기만 했어요. 쓴 기억은 정말 적은 것 같은데요? 대부분 그럴텐데요. 새해나 생일일 때 많이 쓰곤 했어요.
이번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마음이 편안하고 풍성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라는 감상과 함께 부러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소설가라서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요.
→저도 첫 책을 내면서 되게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기록하고, 또 이렇게 책을 읽은 후나 책에 관심을 가지고 북토크까지 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기꺼이 자기의 시간을 내주고, 창작가의 작업물과 함께 해주는 게 저한테는 엄청난 힘이 되거든요. 자기 작품에 100퍼센트 확신을 가지고 사는 작가들도 있을 테지만, 저는 워낙 쫄보라… ‘이게 맞나요? 이게 잘 전달 됬나요?’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작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저 또한 문주희 대표님이 꾸리신 글월이란 공간을 부러워해요. 어떻게 이런 감각을 공간에 녹일 수 있지? 글월 인스타도 보면 글월만의 꾸준한 감성으로 아름다움이 차 있거든요. 문주희 대표님도 글월을 운영하면서, 행복한 경험이 있다면 말씀부탁드립니다.)
→ 글월의 사상(?)을 적립해 갈때 행복을 느껴요. 브랜드의 철학, 제품의 디자인, SNS의 게시물을 위한 이미지와 글, 웹사이트 레이아웃 등 고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이미지와 글, 제품을 만들 때 저는 특히 행복한 것 같아요. 그것이 왜 행복하냐 하면 제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인데요. 다행히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봐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계속할 수 있지만 가게를 운영할 땐 이 일 외에도 제가 알고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현실을 비록 녹록치 않지만 이 행복이 끝나지 않고 계속 되기를 바라게 돼요.
편지 가게 글월로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고, 준비 중인 2권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한 편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될 작가님의 작업도 내심 궁금해지더라고요. 언젠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글을 쓰려면 결국 ‘나’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데, 저는 좀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인 거 같아요. 열등감도 많고요. 뭐가 많이 모자라서 그런건가라고 물으면, 물론 진짜 모자란 부분도 많은데, 완벽에 대한 욕심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완벽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되니,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더더 부족해 보이고. 그런 악순환이 있죠.
그래도 제 장점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정면으로 깨지는 걸 즐기는 타입이에요.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앞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는 ‘열등감’ 같은 감정을 엔진으로 하는 글을 쓸 거 같아요. 가장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건 그래서 심리 스릴러 장르고요, 어떤 장르를 꼭 쓰겠어라는 마음가짐 보다는 이 이야기는 이 장르에 들어갔으면 해, 라는 마음이 커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해당 장르를 공부해 가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문주희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글월의 미래’가 궁금해요. 뭔가 현실적인 것도 좋고 허황된 이상도 듣고 싶습니다.)
→ 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요. 지금 운영하는 연희점도 성수점도 글월을 계속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과정 속의 공간인 것 같거든요. 1층의 글월을 갖고 싶다는 바람을 매일 일기장에 써요. 당장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간절히 기도하듯 바라는 일 뿐이라서요. 이미 공간 구상도 다 끝내뒀어요. 지금 공간들보다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동시대의 우체국의 역할을 하는 미래를 꿈꿔요.
Letter Service in Seoul.
Send your heart to your loved one. And record the present.